54. 굽보다

‘굽보다’는 ‘일을 다하거나 돈이나 물건을 다 써 없애서 끝장을 보다.’는 뜻을 지닌다. 이 ‘굽보다’는 대부분 국어사전의 ‘바닥(을) 보다’라는 관용표현에 해당하나, 한글학회의 ≪큰사전≫(1950)과 ≪우리말큰사전≫(1992)에는 ‘바닥보다’가 표제어로 올라 있어 이에 대응하는 어휘로 처리한다. ‘굽보다’는 달리 ‘굽털다, 풍패치다’라 한다.

①저 사름, 아무 일이나 굽봐사 일어사는 사름이라.(저 사람, 아무 일이나 바닥봐야 일어서는 사람이야.)

②섯다판서게 굽보믄 무너앚아 다른 사름신듸 양보헤야. 질그렝이 앚이믄 욕 들어.(섰다판에서 바닥보면 물러앉아 다른 사람에게 양보해야. 지긋이 앉으면 욕 들어.)

③손 털멍 일어살 때 봐사 굽턴 거 알아져.(손 털며 일어설 때 봐야 바닥본 거 알게 되어.)

예문 ①은 어떤 사람에 대한 평가로, ‘저 사람, 아무 일이나 바닥봐야 일어서는 사람이야.’ 하는 뜻이다. 아무 일에나 끈질기다는 말이다. 여기서 ‘일어사다’는 표준어 ‘일어서다’에 대응하는 어휘로, 달리 ‘일어다’라 한다.

예문 ②는 소위 ‘섰다판’에서 자주 듣는 이야기다. 곧 ‘섰다판에서 바닥보면 물러앉아 다른 사람에게 양보해야. 지긋이 앉으면 욕 들어.’ 하는 말이다. 화투판에서 돈을 잃으면 본전 생각이 나기 마련. 그 미련 때문에 자리를 양보하지 않고 누가 돈을 빌려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여기서 ‘섯다판’은 화투 노름의 하나로, 두 장씩 나누어 가진 화투장을 남과 견주어 가장 높은 끗수를 가진 사람이 판돈을 가져가는 놀이다. 돈을 더 태우며 버틸 때 ‘섰다’라고 외치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무너앚다’는 표준어 ‘물러앉다’에 대응하는 어휘로, 달리 ‘무너앉다, 물러앚다’라 한다. 또 ‘질그렝이’는 ‘아주 끈질긴 모양’을 나타내는 말로, 표준어 ‘지긋이’에 대응한다.

예문 ③은 ‘굽털다’가 쓰인 경우로, 이 또한 화투판에서 자주 듣게 되는 말이다. ‘손 털며 일어설 때 봐야 바닥본 거 알게 되어.’ 하는 뜻이다. 모든 일은 끝날 때 봐야 그 결과를 알게 된다는 말이다. 모든 일은 결과가 중요하다는 것이니, 최선을 다하다 보면 그 결말 또한 좋게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