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걸러지다

‘걸러지다’는 ‘제 마음대로 아주 편하게 눕다.’라는 뜻을 지닌 ‘드러눕다’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달리 ‘갈라지다’라 한다.

①어멍 아방은 눈이 벌겅게 밧더레 는디 아덜을 걸러져둠서 일어나사 말이주.(어머니 아버지는 눈이 벌겋게 밭으로 닫는데 아들은 드러누워서 일어나야 말이지.)

②술 처먹언 들어완 걸러젼 잠수다.(술 처먹고 들어와 드러누워서 자고 있습니다.)

③베 아파가민 곽란 걸렷젠 헹 드러누우렌 헹 갈라지민 베똥 막 돌려.(배 아프면 곽란(癨亂) 걸렸다고 해서 드러누우라고 해서 드러누우면 배꼽 막 돌려.)

④요센 노인당에 강 밥허영 먹곡 갈라졋닥뒈싸졋닥, 대통령 불룹지 아녀마씀.(요사이는 노인당에 가서 밥해 먹고 엎치락잦히락, 대통령 부럽지 않아요.)

예문 ①은 농번기 특히 보리 철에 많이 들을 수 있는 말로, ‘아버지 어머니는 눈이 벌겋게 밭으로 닫는데 아들은 드러누웠으면서 일어나야 말이지.’ 하는 뜻이다. 보리 철이 되면 정말 바쁘다. 너나없이 보리농사를 지어서 놉을 빌릴 수 없고, 조금만 시기를 놓쳐도 보리가 드러누워 버려 일손을 더 필요하게 만든다. 보리를 장만하다 보면 ‘꺼렝이’라고 하는 까끄라기 부스러기가 몸에 달라붙어서 성가시게 만들기도 한다. 또 비가 자주 내리는 계절이다 보니 날씨라도 ‘우치다(궂다)’ 보면 마음부터 급해진다. 어머니 아버지는 바빠 경황없이 밭으로 내닫는데 아들은 ‘걸러져둠서’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복장 터지는 일이다. 여기서 ‘눈이 벌겋다’는 ‘눈이 벌겋게 되었다.’는 뜻으로, 너무 바빠서 경황없다는 의미로 쓰였다. ‘다’는 표준어 ‘닫다[走]’에 대응하며, ‘걸러져둠서’의 ‘-어둠서’는 ‘-어 있으면서’의 의미를 지닌 어미이다.

예문 ②도 늦잠을 자고 있는 것에 대한 원망의 말로, ‘술 처먹고 들어와 드러누워서 자고 있습니다.’ 하는 뜻이다. 이 또한 볼썽사나운 일이다. ‘처먹다’는 표준어와 같은 형태로, ‘처-+먹다’ 구성으로, ‘처-’는 ‘많이, 마구, 몰아서’라는 뜻을 더하는 접두사이다. ‘처담다, 처들이다, 처박다, 처마시다’(표준어와 같은 형태임), ‘처듣다(욕이나 잔소리를 한없이 듣다)’, ‘처짇다(처때다)’, ‘처시끄다⋅처시르다⋅처실르다(처싣다)’, ‘처마끼다⋅처매끼다(처맡기다)’ 등의 어휘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처먹다’를 달리 ‘퍼먹다’라 한다.

예문 ③은 민간요법의 하나로, ‘배 아프면 곽란(癨亂) 걸렸다고 해서 드러누우라고 해서 드러누우면 배꼽 막 돌려.’ 하는 뜻이다. 배꼽을 힘주어 돌리면 곽란 증세는 어느 정도 진정이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베똥’은 달리 ‘베또롱’이라 하는데, 표준어 ‘배꼽’에 대응하는 어휘다.

예문 ④는 요즘 노인정의 풍경을 보는 듯하다. ‘요사이는 노인당에 가서 밥해 먹고 엎치락잦히락, 대통령 부럽지 않아요.’ 하는 뜻이다. 노인정에 가면 벗이 있지, 운동 기구가 있지, 때 시간에 맞춰 점심을 주지, 더우면 에어컨을 켜지, 정말이지 대통령 삶 부럽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서 ‘갈라졋닥뒈싸졋닥’은 ‘등으로 누웠다, 배로 누웠다 하면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로, 표준어 ‘엎치락잦히락’에 해당한다. 또 ‘불룹다’는 표준어 ‘부럽다’에 대응하는 어휘로, ‘부룹다, 붑다’라 한다.

무더워지는 여름철, 배고프지 않게 먹고 시원한 데서 쟁쟁한 매미울음 소리 들으며 ‘갈라졋닥뒈싸졋닥’ 하는 상상만으로도 여유로워지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