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치다

‘치다’는 ‘뜨거운 김으로 익히거나 데우다.’는 뜻을 지닌 어휘로, 표준어 ‘찌다[蒸(증)]’에 대응한다. ‘찬밥이나 떡 따위를 도로 익히거나 데우다.’를 ‘도치다’라 말하기도 한다. ‘도치다’의 대응 표준어는 없다.

①눈 퍼뜰퍼뜰 오는 날은 어디 나뎅기기가 궂어. 가도 반가와허지도 아녀고. 집의 들엉 심심허난 감저 쳥 먹어낫어.(눈 퍼뜰퍼뜰 오는 날은 어디 나다니기가 궂어. 가도 반가워하지도 않고. 집에 들어서 심심하니 고구마 쪄 먹었었어.)

②흐린좁에 감저 썰엉 버무령 놩 떡을 치믄 경 맛 좋을 수가 엇어. 이제도 맛 좋을 거라.(차좁쌀에 고구마 썰어서 버무리어 놓아 떡을 찌면 그렇게 맛 좋을 수가 없어. 이제도 맛 좋을 거야.)

③송펜은 으나 징 허영 쳐. 쳐 가지고 언물러레 놩 시쳐.(송편은 삶으나 겅그레 해서 쪄. 쪄 가지고 찬물에 놔서 씻어.)

④오널 점심이랑 식은밥 도쳥 먹게.(오늘 점심일랑 찬밥 도로 쪄서 먹자.)

예문 ①은 눈 내리는 날 추억으로, ‘눈 퍼뜰퍼뜰 오는 날은 어디 나다니기가 궂어. 가도 반가워하지도 않고. 집에 들어서 심심하니 고구마 쪄 먹었었어.’ 하는 뜻이다. 이때 내리는 눈은 함박눈이다. 여기서 ‘퍼뜰퍼뜰’은 ‘함박눈이 어지럽게 내리는 모습’으로, 눈이 난분분(亂紛紛)하게 내린다는 것이다. ‘퍼뜰퍼뜰’은 표준어 ‘펄펄’에 가깝지만 음절수에서부터 차이가 나니 그 말맛이 다를 수밖에 없다. ‘나뎅기다’는 표준어 ‘나다니다’에 해당하며, ‘감저’는 표준어 ‘고구마’에 대응한다. 한편 ‘감자’의 제주어는 ‘지실, 지슬’이라 함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예문 ②는 ‘침떡(시루떡)’에 대한 이야기로, ‘차좁쌀에 고구마 썰어서 버무리어 놓아 떡을 찌면 그렇게 맛 좋을 수가 없어. 이제도 맛 좋을 거야.’ 하는 뜻이다. 시루떡을 만들 때 고구마를 채 썰어서 차좁쌀 가루와 함께 넣어 찌면 맛이 좋다는 것이다. 이때 채 썬 고구마가 소의 기능을 하는 것이다.

예문 ③은 송편 만들기에 관한 이야기로, ‘송편은 삶거나 겅그레 해서 쪄. 쪄 가지고 찬물에 넣어서 씻어.’ 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징’은 표준어 ‘겅그레’에 해당한다. ‘언물’은 표준어 ‘찬물’에 대응하는 어휘로, 달리 ‘실려운물, 물’이라 한다. ‘시치다’는 표준어 ‘씻다’에 대응하는 제주어로, 달리 ‘시지다, 싯다’라 한다.

한편 예문 ④는 ‘한번 쪘던 음식을 다시 찌다.’는 뜻으로 ‘도치다’가 쓰이는 경우다. ‘오늘 점심일랑 찬밥 도로 쪄서 먹자.’ 하는 뜻으로, ‘식은밥’을 처리해 버리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식은밥’은 표준어 ‘찬밥’에 대응하며, ‘도쳥’은 ‘도로 찌어서’의 뜻으로 ‘도치다’의 ‘도-’는 ‘도로’의 뜻을 지닌 접두사이다.

위 예문들을 통하여 알 수 있는 사실은, 표준어 ‘찌다’와 제주어 ‘치다’는 된소리와 거센소리로 짝을 이룬다는 것이다. 이는 문헌 어휘의 ‘ㅶ’ 어두자음군(語頭子音群)이 표준어에서는 된소리 ‘ㅉ’으로, 제주어에서는 거센소리 ‘ㅊ’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어두자음군’이란 ‘ㅂ’으로 시작하는 ‘ㅳ, ㅶ, ㅵ’ 등 두 개 이상의 자음이 모여 있는 것을 말한다. 어두자음군의 몇 예를 보이면 아래와 같다.

문헌 어휘          표준어           제주어(예문)

다[開(개)]      뜨다             트다(눈 턴 보난 아무도 엇어.)

다[慄(율)]      떨다             털다(나 털엄시냐?)

[隻(척)]         짝                착(나 신착 아보라게.)

다[焙(배)]      쬐다             초다(이레 들어왕 불 초왕 갑서.)

다[摘(적)]      따다             타다(귤 탈 놉 빌어사키여.)

곧 ‘ㅳ’과 'ㅵ'은 표준어에서는 ‘ㄸ’으로, ‘ㅶ’은 ‘ㅉ’으로 변화하는 반면, 제주어에서는 각각 ‘ㅌ’과 ‘ㅊ’으로 변화하는 것을 알 수 있다.(각 어휘의 예문은, ‘눈 떠 보니 아무도 없어.’, ‘나 떨고 있니?’, ‘내 신짝 찾아보아라.’, ‘이리 들어와서 불 쬐고 가십시오.’, '귤 딸 놉 빌려야겠어.' 하는 뜻임)

표준어 ‘찌다[蒸]’는 문헌 어휘 ‘다’에서 유래한다. ≪훈몽자회≫의 “蒸  증(하:8), 饙 아  분(하:12)”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아 다’는 ‘애벌 찌다’는 뜻이다.

결국 표준어 ‘찌다’와 제주어 ‘치다’는 아래와 같은 과정을 거친 결과다.

표준어: 다>다>찌다

제주어: 다>다>치다